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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색채(Color, Tone)

색(色), 색채, 색깔...

어떤 색의 넥타이를 매야할까, 어떤 색의 옷을 입고 나가야 할까? 일상 속에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수많은 색깔의 고민을 하게 된다. 그만큼 색채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튀는 색깔은 개성이 될 수도 있지만 집단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기에 때와 장소, 목적(Time, Place, Object)에 따라서 어울리는 색채를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옷이나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색채도 그 사람을 판단하고 사람에 대한 인상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최근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의 순례의 해 특이한 그 제목만큼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풍이 일류(?)의 바람을 타고 한국에 온 듯하다. 물론 작가의 명성도 인기에 한 몫을 하였겠지만 특히나 눈길을 끌었던 점은 이번 작품에서 하루키가 주목한 것이 바로 색채였다는 것이다. 각 등장인물 별로 이름 속에 가지고 있던 색을 지칭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색채는 다양하기 이를 데 없음을 나타내고자 한 부분에서 지속적으로 색채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게 된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출처: yes24.com)



자기 만의 색채가 없다는 책 속의 주인공 다자키 쓰크루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비슷한 생각을 한 때가 떠올랐다. 정이현 작가의 달콤한 나의 도시작품 안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이도 저도 아닌, 검은색흰색도 아닌 회색이라고 자신을 폄하하였던 장면이었다. 어쩌면 이 때부터 나 자신만의 색깔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으리라고 혼자만의 생각으로 어렴풋이 짐작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기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 익숙한 사람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작품 속에서 등장한 회색에 대하여 깊은 공감을 느꼈으리라. 꼭 자기만의 색을 가져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 때쯤 회색이야말로 조화로 상징되는 나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여년의 길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나의 색은 그 시기별로 색채를 달리하였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주로 초록색 계열이 나의 주위에 많이 있었다. 특히 주위 학교 학생들로부터 시금치라고 불리며 놀림감이 되고는 하였던 교복이 대표적이었다. 주로 학교에서 생활하였던 터라 학교의 상징색인 초록색은 학교의 상징이기도 하였지만 나를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는 파란색계열에 파묻혔다. 푸른 곰팡이라고 놀림을 받으면서도 그 때에는 파랑이 내 마음을 사로 잡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빨간색 은 유독 나와 인연이 없기도 하거니와 그 색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가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부정적인 부분, 예컨대 붉은 피나 상처들을 떠올렸기에 그리 좋아하는 색이 아니었다. 이외에도 보라색은 유독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했던 색이었으며 주황색은 왠지 모르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여 기분을 좋게 만드는 색이기도 하다.






자기 만의 좋은 색을 지닌 사람은 언제 봐도 참 좋다’, 

자기 색이 너무 뚜렷한 사람은 유연하지 못하여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등등...


자기 만의 색이 뚜렷하게 있는 것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 자신이 그렇지 못하여서 그런지 몰라도 자기 만의 색깔이 뚜렷한 사람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만의 특징이 온몸에 오롯이 배어 있음을 눈에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인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색의 느낌은 단순히 옷 입는 스타일에서 올 수도 있지만 직관적으로 보았을 때, 자연스레 다가온다. 물론 그 차이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에 객관적으로 명확히 기준을 지을 수는 없겠지만 강렬하고 카리스마 있는 빨강, 귀엽거나 긍정적인 면이 많이 보이는 노랑, 안정적이고 주변화 조화를 이룰 것 같은 초록, 믿음직한 신뢰를 갖고 쿨하고 멋진 파랑, 우아하면서도 신비스럽고 개성적인 보라 등의 느낌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도 색채적으로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한민국 사회 내에서는 색이라 하면 유독 정치적인 부분에서 크게 이슈가 된다. 특히 색깔 논쟁에 심취하여 색에 관한 설전이 오고 가는 것을 보고 앉아 있으면 역시 대대손손 색에 민감한 민족의 자손이라는 게 드러난다. 빨갱이로 대변되는 좌파와 우파 갈등에서부터 최근 각 당을 대표하는 상징색을 교체하는 과정에서의 논란까지, 정체성을 뚜렷하게 나타내준다는 색의 특징을 교묘히 이용한 사례도 다분하다. 이렇게 한 나라 안에서도 각기 다른 색깔이 집합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나라별로 혹은 나라 안 지역별로 나타나는 색깔의 차이도 선명하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인만큼 다른 듯 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그 사회의 원동력이 되고는 한다.



4계절 중 다채로운 색의 향연을 볼 수 있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가을은 단풍이 들어 형형색색으로 자기 자신의 색을 찾아가는 계절이다. 가을에 태어난 나 또한 나의 색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의 색이 오롯이 나타나기 만을 기다리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아야 되지 않을까. 어쩌면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색깔은 가을 단풍처럼 물들어 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숲 속에서 보았을 때는 자신의 변화를 다분히 모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모든 현상에서 한 발자국 띄어서 보면, 가을 단풍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대한민국 사회도 그 속에서 한 걸음 벗어나 바라본다면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어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단풍이 가을이라는 계절을 거쳐 잎을 떨구었다가 봄이 되면 다시 파릇파릇한 새 잎으로 다시 나오듯이 우리네 각자의 삶과 인생의 색채도 순간순간 바뀌어 갈 것이다. 제일 좋은 것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이가 들어 늙어서도 일정한 색채의 흐름 속에서 그 색깔을 유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어떤 색을 띠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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