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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렁구시렁

나이, 연필, 거울, 별 그리고 은교

* 은교

 


나이, 연필, , 거울, 심장, ...

 

자극적인 소재로 나의 눈길을 끌었던 이 영화는 나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짜릿함을 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영화의 정사신과 노출 정도에만 관심을 갖게 되며 영화에 접근하게 된다. 또한 이는 영화에 대한 홍보조차 그러한 부분에 대한 초점을 맞추어 홍보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와 같이 접근한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예상치 못한 느낌은 그것의 효과를 더 배가 시킨다.

 



70대 노인과 10대 소녀의 사랑.

기존의 관념적인 시각으로 접근 했을 때의 느낌은 나또한 머리로는 이해하나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전의 노인 분들끼리의 사랑을 표현하였던 죽어도 좋아’, 어르신 분의 삶과 사랑에 대해 시로 표현하였던 이창동 감독의 와 같은 작품들을 보면서는 실제로 내 자신이 진정으로 처해있지 않은 현실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해하기 힘들었으며 어려웠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는 70대의 이적요 시인의 욕망과 슬픔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기에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이적요 을 박해일 씨께서 맡아서 그나마 느낄 수 있는 간격을 좁혀준 것도 있으려나...)

 



너에게 연필이란 어떤 의미를 갖느냐?‘

연필이란 것은 나에게 슬픔이라고 말하는 이적요 시인의 모습에서 나에게도 저러한 슬픔을 간직한 물건이 있는가 생각해보게 한다.

나에게 특별한 의미의 물건이 있는가.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작은 강아지 인형이 문뜩 떠오른다. 헤질 때까지 어떠한 다른 인형을 주어도 바꾸려 하지 않던 작은 인형. 그리고 지금은 녹이 슬고 지지대가 부러져도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들고나가는 우산이 있다. 외롭고 쓸쓸할 때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를 대신하여 비를 막아주며 함께했던 우산. 나에게 우산은 외로움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의미인 물건은 없다. 같은 물건이라 해도 저승과 이승의 차이가 날 수 있단다. 은교가 서지우에게 공대생이라 말하며 별은 다 같은 별인 줄로만 아는 사람을 나무라는 부분은 다름에 대한 의미의 함축성을 잘 보여준다.

 

유독 슬퍼보였던 은교와 서지우의 정사 장면.

자신을 예쁘게 써준 사람이라고 아는 서지우에 대한 호기심에 의해 계단을 내려간 은교를 탓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정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이적요의 모습과 눈빛은 자극적인 장면을 하나에 거대한 슬픔으로 치환하는 역할을 한다.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장면이었던 만큼 더 마음 속 깊숙이 폐부를 찌르는 듯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이렇게 슬픈 섹스 신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허탈, 분노, 안타까움, 전이, 슬픔이 이 장면 하나에 녹아있던 것이다.

 

세 인물의 접점을 찾아내어 보는 방법도 흥미롭겠지만 각각의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의미를 세 사람의 시각에서 따로 바라보면서 영화를 감상한다면 영화가 가지고 오는 의미는 제각각일 것이다. 첫 번째에는 개인적으로 영화의 중심인 이적요의 시선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슬프게 느껴지게 되었다. 분노와 욕망, 탐닉을 뛰어 넘는 그 슬픔의 정체는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현실에 대한 슬픔이기도 하며 나 자신에 대한 슬픔이기도 하고 세 사람의 관계에 대한 슬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은교의 입장에서, 서지우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에 느낌은 과연 어떨까.

은교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수도 있고 한 사람의 껍데기임을 자처했다가 그 모순에 빠져 좌초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잘가라, 은교야

이 한마디를 남기고 턴오프 되는 장면은 나의 가슴에 긴 여운을 남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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