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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노예(Slave)

노예(奴隸)

1.남의 소유물로 되어 부림을 당하는 사람. 모든 권리와 생산 수단을 빼앗기고, 물건처럼 사고팔리던 노예제 사회의 피지배 계급이다.

2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나 자유를 빼앗겨 자기 의사나 행동을 주장하지 못하고 남에게 사역(使役)되는 사람.

3 .인격의 존엄성마저 저버리면서까지 어떤 목적에 얽매인 사람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전라도 신안군 "염전 노예사건"

-대주그룹 허재호 전 회장의 "황제 노역"

-포괄근저당 족쇄에 묶인 '銀行 노예' 130만명


노예의 정의와 최근 노예와 관련된 이슈들이다.

생각보다 우리가 생각한 노예 이외에 노예들이 많은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사를 보면서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진정 노예가 아니라 할 수 있는가? 조금 더 근원적인 질문으로 들어간다면야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난 어떠한, 어느 것에도 노예가 아니야!' 라고 말 못할 것임을 어쩌면 암묵적으로 이미 우리들은 동의하고 있을지 모른다. 링컨의 노예해방이 있고나서 실제 노예가 인간 사회에서 사라졌음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아직 노예에서 해방되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일까?





유구무언의 의미가 시간이 흘러오면서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보통 유구무언이라 함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 변명할 여지도 없는 상황에서 쓰이고는 한다. 특정 상황에서 무언가 잘못한 사람의 입장에서 나온 말이지만 최근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의미의 유구무언이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입이 있음에도 자신의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그 예이다. 입에 재갈을 물린 것도 아닌데 말하지 못하는 이들은 현대판 노예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노예를 소유하고 있는 주인은 노예와의 관계에서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때에 주인은 단순히 한 명의 개인이 될 수도 있으면서도 국가가 될 수도 있으며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으로도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노예를 노예라고 판단할 수 있는 증표는 단순히 신체적, 물리적인 구속 이외에도 더 중요한 것에 달려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누려야 하는 인간적인 권리에 대해서 당당히 말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노예와 다를 바가 없다.

 

한국 사회 속에도 이처럼 유구무언인 사람들이 도처에 존재한다. 다만 주인이 사람이 아닌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만이 다른 점일 것이다. 돈의 노예들은 돈 앞에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권력의 노예들은 다른 이들에게 잘 보여 권력을 얻고자 그들의 마음 속 진정한 목소리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그 사람이 공무원이든, 대기업 사원이든 간에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누구나 똑같을 뿐이다.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권리를 넘어서는 발전된 인간다움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얻은 결과물 중에 하나가 평등이란 가치이며 이는 의식주에만이 아닌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분에 있어서 적용되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노예에서 해방시켜주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존의 가치인 평등인간다움을 기초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야만 한다. 긴급 구호로 구제를 받을 수 있었던 송파의 세 모녀가 공과금을 놔두고 비극적인 선택을 한 데에는 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들과 같은 현대적 노예들에 대한 무관심은 사회 기반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구성원들의 발전된 인간다움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못 먹고 못 사는 문제를 떠나서 그들의 삶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이를 들어줄 수 있는 사회의 경청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현대판 노예들을 현재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위한 전제 조건은 바로 말할 수 있는 자유와 그것을 들어줄 수 있는 사회란 것을 떠올려야 할 때이다.

 

노예는 말없이 묵묵히 주인이 시키는 것만 한다. 그렇기에 일할 노, 예속 예자를 써도 무방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이제 단순히 일하는 것에서 벗어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노예들이 이곳저곳에 방치되어 있다. 그들이 이제는 더 이상 다른 무언가,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억압받지 않으며 아닌 것에는 노(NO)를 외치고 맞는 것에는 예(Yes)를 외칠 수 있는 노예(No,Yes)”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노예들은 이제 말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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