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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기차, 철도, 역 그리고 사람




해가 진 어두컴컴한 밤 속에서의 청량리역은 찬 공기가 온몸 구석구석을 휘감을 정도로 냉기가 가득하다. 남들은 따뜻한 방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을 때 밤 기차를 타기 위해서 온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역의 모습은 어느 역이나 비슷할 것이다. 물론 그 때가 한 해가 마무리되고 다음 해로 넘어가는 시기라면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말이다.


정동진행 밤 기차를 타본 사람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 5~6시간 정도의 긴 기차 여행을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느끼겠지만 꽤나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런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좁은 기차 안에서 새우 잠을 청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라도 떠나는 기차 여행은 그것만으로 기차의 낭만을 전해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기차에 대한 첫 인상은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좋게 말하면 서울 시민, 조금 비꼬아서 말하면 서울 촌뜨기라고 할 수 있는 나에게 어렸을 때의 어렴풋한 기차에 대한 기억 이후 실질적으로 기차가 친근해질 수 있던 시기는 군대 시절이었다. 훈련소에서 나와 타는 첫 기차 안에서 느꼈던 불안하고 초조했던 순간 그 이후로도 기차, 철도는 내 군 시절을 함께한 존재였다. 군대의 수송을 담당하는 철도과에 배치된 게 하늘에 뜻이었을까. 서울역, 대전역, 용산역, 서대전역 등등 그 이후로 역은 굉장히 친숙한 존재가 되었고 전국의 역들과 일을 하면서 기차는 그 당시 삶의 일부가 되었다. 특히 고요한 새벽녘, 생활관 내부를 가로질러 귀 속에 박히던 기차 소리는 애증의 징표였다. 오도가도 못하는 내 신세에 전국을 다니며 잠시 스쳐가는 기차는 그 존재만으로도 나의 가슴을 후벼 팔 뿐이었다. 어렴풋이 아무도 없는 플랫폼에 울려 퍼지던 탑승구 안내 방송 멘트는 아직까지도 귀에 맴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니, 이 만하면 기차에 대한 내 인상이 상당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 할 수 있으리라.



하루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역사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괜한 설렘 혹은 안타까움이 들고는 하였다. 자신의 목적지를 향하여 출발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는 동시에 도착지로서의 안도감과 편안함이 상존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별과 만남이 수백 번 반복되면서도 사람들 저마다의 인생이 담겨있는 한 장면들은 어느 하나 의미 없는 것이 없었다.



그런 철도, 기차가 요즘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철도 민영화 논쟁 때문에 시끄러운 것이다. 본인 뿐만이 아니라 기차와 역과 관련된 추억을 가지고 있다거나 철도가 생활의 일부인 사람들이 국민들의 상당 수 있다. 자회사 설립이 민영화의 시작이다 등의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이 사안에서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부분은 어떤 가치를 우선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국민들의 발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 철도가 단순히 적자와 부채가 상당하다는 이유로 경영 효율성을 우선시 할 수 있는 것일까. 한 번의 사고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국가적 교통 수단인 철도가 효율성이라는 이름 하에 안전이라는 가치를 외면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효율성이 서비스 이용 가격 상승이라는 또 다른 얼굴을 내보일 때, 철도를 이용함에 있어서 배제되는 서민들의 권리는 누가 챙겨줄 수 있으려나.



그 역할을 해줄 수 있고 해주어야 하는 대상이 바로 국가이다. 현재 민영화 논란이 되고 있는 철도, 의료, 항공은 모두 공공 서비스의 일종이며 공공 서비스는 복지의 또 다른 모습이다. 선별적, 보편적 복지를 떠나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인 것이다. 국가가 소소하고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위치한 국민들을 보살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선행해야 할 것은 다수의 국민이 누리는 서비스를 누구나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일이다. 현재 일부 국민들이 이렇게 민영화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은 그러한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해줄 것이란 신뢰가 밑바탕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개인의 권리를 위임 받아 보호해주어야 할 국가가 그런 신뢰를 못 받고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에도 여행을 간다거나 다른 지역에 갈 일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나는 버스보다는 기차를 자주 애용하는 편이다. 몇 분의 오차는 있지만 꽤 정확히 걸리는 소요시간, 기차 안에서 들리는 특유의 기차 소리, 조용하면서도 플랫폼에만 들어서면 왁자지껄해지는 기분 좋은 시끄러움 등 기차가 가지는 매력적인 요소는 참 많다. 비록 적자 운영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어디든지 마음껏 다닐 수 있게 해주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 것이 기차 말고 뭐가 더 있을까 싶다. 만약 이러한 것들을 누릴 수 없도록 하는 민영화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국가가 그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뿐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주권을 파는 행위임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정신의 바탕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다고 한다. 100명의 범법자를 잡는 것을 우선하는 것이 아닌 1명이라도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끔 하는 것이 내재된 목표인 것이다. 이를 국가가 상기하여 앞으로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플 때 나의 발이 되어줄 수 있는 철도, 기차가 있어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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