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인터넷이 만든 멍청해진 사람들의 이야기
종이에서 스크린으로의 변화는 단순히 글이 담긴 문서를 살펴보는 방식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다. 이 변화는 이 문서에 집중하는 정도와 빠져드는 깊이의 정도에 영향을 미친다.
하이퍼링크, 링크는 오랫동안 문서의 보편적인 구성요소였던 암시, 인용, 주석 등의 변주라 할 수 있다. 링크는 단순히 관련보도 자료의 위치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이 자료들이 있는 곳으로 몰고 간다. 링크들은 우리가 이들 자료 중 어느 하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게 한다기보다는 일련의 문서 사이에서 들어갔다 나가길 반복하게 한다. 문서에 대한 집중력은 더욱 약해지고 일시적인 것이 되었다.
웹에서 검색할 때는 숲을 보지 못한다. 심지어 나무도차도 보지 못한다. 잔가지와 나뭇잎만 볼 뿐이다. 다른 종류의 정보를 하나로 모으면서 멀티미디어 인터넷은 콘텐츠를 더욱 분절화하고 우리의 집중을 방해한다.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새로운 미디어는 낡은 것에 추가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오래된 것을 평화롭게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새로운 미디어는 낡은 미디어들이 새로운 형태나 위치를 찾을 때까지 압박을 멈추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의 한 예로 책과 동영상을 결합한 Vooks가 있다. 책장과 책장 사이에 관련 영상을 삽입함으로써 책의 내용과 함께 영상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추가해주는 역할을 한다.
콘텐츠의 가격분리(Unbundling)
현실세계에서의 우리의 경험조차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도서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소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가 아닌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다.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인 다른 세상, 즉 저자의 사고 속 세계에 완전히 젖어드는 것을 잃게 될 것이 두려웠다. 우리는 점차 잡지와 신문을 읽는 대 이용하고 있는 방식, 즉 정신의 일부는 이곳에 두고 또 다른 일부는 다른 곳이 두는 방식을 따르게 될 것이다.
글을 읽을 때 이제 더 이상은 선형적 방식만 고집할 수는 없다.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대중화된 고요함이 의미와 정신의 일부였던 깊이읽기의 관행은 점차 사라지고 계속 감소하는 소수의 엘리트만의 영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지식이 얕아지고 있다!
리처드 오웬 캠브리지가 그의 서재에서, 책장의 책 제목을 읽고 있는 사무엘 존슨에게 “사람에게 책의 겉표지를 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 던지자 존슨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유는 간단하네. 지식에는 두 종류가 있지. 하나는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해 직접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련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네.” 정보의 도서관인 인터넷이 축소시키고 있는 것은 존슨이 말한 첫 번째 종류의 지식이다. 우리 스스로 깊이 아는 능력, 풍부하고 색다른 일련의 연관관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바로 그 능력 말이다.
우리는 know-how에서 know-where로 바뀐 지식 구조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는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우리 일상에 들어옴으로써 생겨난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간단한 요리하나를 한다손 치더라도 인터넷에 요리 레시피를 검색해서 그것에 따라 맛있는 요리를 해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인터넷에 있는 요리 레시피가 우리의 지식이 될 수는 없는 것을 캠브리지와 존슨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책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이, 사회 내에서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방증한다. 인터넷과 연결할 수 있는 도구인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없으면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보고를 잃는 것과 다름없다. 세상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는 물론이거니와 웬만한 일을 진행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얕아진 지식으로 인하여 우리는 스스로 생각할 힘도 없다.
구글 북서치(Google Book Search) & 사서
정보전문가는 그 정보의 진실성을 확인해야 하며, 다양한 시각에서 정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google은 수익을 창출해내기 위한 상업 기업일 뿐이다. 구글과 다른 인터넷 기업들이 정보교환에 있어서 효율성을 지적 발전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는데, 효율성에 대한 산업적 이상이 지성의 영역으로 옮겨올 경우 목가적인 이상은 치명적인 위협을 받는다. 정보를 신속히 검색하고 발견하는 일을 발전시키는 것이 결코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균형 잡힌 사고의 발달은 광범위한 정보를 찾고 신속하게 분석하는 능력과 함께 폭넓은 성찰의 능력도 요구한다. 효율적인 정보 수집을 위한 시간과 함께 비효율적인 사색의 시간도, 기계를 작동하는 시간과 함께 정원에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도 모두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구글의 숫자의 세계에서도 일해야 하지만 슬리피 할로우에서의 휴식도 필요하다. 오늘날의 문제는 우리가 이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사고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능력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의 북서치 프로젝트가 완전 옳지 못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들이 전 세계에 존재하는 책들을 서가에서 인터넷 가상공간으로 옮겨놓는 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분명히 큰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헌정보학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장서를 가상의 재화로 만드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그를 이용하는 배포하고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입장에서 공정하고 정당하게 이루어질 수 있느냐하는 문제가 생긴다. 도서관이 갖고 있는 공공의 특성을 인터넷에서도 유지할 수 있냐, 구글이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을 수 있냐 등의 문제가 파생되는 것이다. 이중에서 구글의 상업적이고 효과적인 경제 논리에 따른 문제점은 특히 다양하고 방대한 지식을 차별 없이 제공해야 하는 도서관의 기본적인 역할과 배치가 된다. 이와 함께 사서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임무와 역할에 대한 범위 논의도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