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0.100
숫자 “100”을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온 사람으로서 100점 만점이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시험에서 100점을 맞아야만 인정받는 사회, 100점 만점에서 1개를 틀렸다고 우는 아이들. 듣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행동이지만 어릴 적 당시에 있던 아이들에게는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100이라는 숫자가 지니는 표상 중에 제일 으뜸인 것은 ‘완전(完全)’이 아닐까 한다. 소수의 합이 그 자신이 되는 수를 완전수라고 볼 때, 100은 완전수는 아님이 분명하지만 왠지 풍기는 분위기,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포스(?)랄까, 그 자체로서 완전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00% 완전 분해!”,“싱크로율 100%” 등등 흔히 쓰고 있는 표현에서 그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1.여러 가지의 백일
D-100. 한 여름 사방이 꽉꽉 막힌 공간에서 보였던 그 숫자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 자릿수가 깨지는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별 큰 의미는 아닐 수 있겠지만 세상의 모든 짐은 다 진 것 마냥 느끼던 그 때, 고3시절에는 꽤 큰 중압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100이라는 숫자가 일(日, Day)와 합쳐졌을 때 나타나는 효과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100일이라는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흘러감을 느끼고 후다닥 정신없이 보낸 때가 이 시절이 아마 난생 처음이었을 것이다. 100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불법(?)임을 알고도 마시는 백일주(酎)는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행한 충동적인 일이기도 했다.
반면, 100일이라는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진 적은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시기이다. 바로 군대 입대 후, 100일 휴가를 나오기까지의 기간 말이다. 이때도 시간이 지나고 봤을 경우에는 수능 백일 때처럼 시간의 흐름이 굉장히 빨리 지나간 것 같지만 당시의 100일은 영겁의 시간이었다. 국방부의 시계는 사회의 시계보다 현저히 느리게 간다고 하지 않는가. 휴가를 나와 있던 순간만큼은 5.6초로 순식간이었지만 휴가를 나오기까지의 다사다난한 수고와 역경이 100일이라는 시간 속에 오롯이 담겨 있었기에 어느 때보다도 길었던 시간으로 느껴지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성친구와의 100일은 또 다른 특별함을 선사한다. 100이라는 숫자가 주는 포스가 여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연인과의 100일이 중요한 이유는 처음으로 맞는 기념일이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100일 단위로 증가되는 추가적인 기념일들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3달이 조금 넘는 시간으로 2,400시간, 144,000분, 8,640,000초 정도이다. 절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다. 연애 초반에 100일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을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하여튼 이러저러한 말을 각설하더라도 핵심은 100일이라는 기념일이 주는 상징성은 연인들에게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2.100일의 기적
몇 년 전, SBS에서 방영한 ‘산후조리 100일의 기적’은 또 다른 의미에서 100일이 가져올 수 있는 변화 혹은 100일이라는 시간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의 중요성 및 100일을 대하는 태도를 알려주기도 하였다. 산후조리 과정에서 산모와 아이 간에 관계, 산모의 건강이 이때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100일의 기적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산후조리에서의 100일의 기적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수많은 100일의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다. 다만 그 기적을 현실로 만들어내느냐는 100일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량과 행동에 달려있을 뿐이다. 다이어트를 100일해도 남들이 몰라보게 살이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수능을 100일 남겨둔 학생이 이른바 수능대박을 터트리는 100일의 기적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100일이 가지는 분위기, 포스, 중요성, 특별함이 실제의 기적으로 이어지고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알 수 있다. 100일은 기적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3.세월호 100일
2014년 7월 24일. 이 날은 100일 째였다. 4.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
세월호가 남긴 숙제를 풀고 이를 해결하는 세월호 100일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언론과 사회가 주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세월호 사건의 진위를 밝혀낼 ‘세월호특별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했고 이미 세월호 사건은 여야의 정쟁의 대상으로 변질되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100일의 기적을 이끌어내기 위한 전제조건은 100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지이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의 의지는 도보행진과 단식투쟁을 보더라도 약하지 않았다. 다만 그 의지를 현실화 시켜줄 대한민국 사회, 정치, 국회, 나아가 이 나라의 수장까지의 의지는 약했음을 결과는 보여주고 있다. 혹자는 이렇게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100일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으며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한계임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이는 그 자체로서 국가의 의무를 저버리는 말이 아닐까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현실의 한계라면 대한민국이 나아가는 방향, 미래는 이 한계에만 머무르게 될 것이다.
세월호 100일은 그 어떤 100일보다도 중요하고 특별하며 기억되어야 한다. 기념일이라는 것에 축하의 의미가 먼저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 날을 기억하고 잊지 않음으로써 후대에 이를 전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음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4.100+@
1기압에서 물이 끓는 섭씨온도는 100도 씨이다. 서서히 가열된 물은 100도를 기점으로 수증기로 기화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지금, 앞으로 중요한 것은 물이 끓어 공기로 변하듯이 우리 사회도 변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미래를 바라보고 변화를 이끌어낼 때이다. 언제까지 과거의 모습과 행태에만 정체되어 있을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에게는 특히 식어가는 온도를 끓어 올리기 위한 노력이 더 요구된다. 100일을 다루는 것에서부터 이미 언론 내부에서 차이가 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100일이 아니라 1000일이 되더라도 언론은 지속적인 관심과 환기를 해주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잊지 않게 하는 것은 계속해서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세월호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다큐멘터리이든 안전과 관련된 예능 프로그램이든지 간에 상관없다. 100도까지 물이 끓기 위한 군불을 계속해서 지펴주는 것이 지금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