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우리 사회의 기억, 망각, 치매

럴균 2014. 5. 19. 21:39

 

사람들은 기억과 망각을 동시에 행하며 산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도 없으며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했을 때는 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론 너무 많은 기억이 사람을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으며 너무 많은 망각은 똑같은 잘못을 똑같이 저지르는 반복된 실수를 유발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기억과 망각의 적절한 조화는 본능에 의거한 살기위하여 뇌가 알아서 진화한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과 망각의 적절한 조화가 극단적으로 깨지는 경우가 바로 치매가 아닐까 한다. 생활 속에서 깜빡깜빡하는 정도에 그치는 건망증의 수준을 넘어서는 치매는 퇴행성 뇌질환으로 기억의 강제 실종을 만드는 병이다. 어떻게 보면 암보다도 무서운 병이 치매이다. 아프면 아픈 곳을 치료하면 되지만 이 병은 환부를 도려낼 수도 없이 사람을 망치는 병이기 때문이다. 치매가 더 무서운 점은 이 병이 환자 개인을 망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의 고통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이것이 가져오는 파급력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기억을 송두리 째 앗아간다는 점에서 과거를 공유할 수 있는 추억, 감정 그리고 한 명의 인간을 역사 속의 페이지에서 지워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치매는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심지어 나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병이라고 전문가는 말한다. 망각의 최고점이라 할 수 있는 치매가 퇴행성 병이라는 것은 단순한 질병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에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잊는다는 것은 발전이 아닌 퇴보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도 울리는 하나의 경종 역할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우리나라 옆에 계신 총리님에서부터 이를 되새겨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유행 아닌 유행으로 번지고 있는 요즘, 세월호 참사와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고 모쪼록 우리 사회에 기억의 소중함, 망각의 위험성에 대해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망각의 정도는 개인과 사회에 일정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개인에게 허용되는 망각의 정도가 그대로 사회에도 이어진다면 이 사회는 발전보다는 퇴보를 거듭할 것이다.

 


잊지 않고 지난 사고와 사건으로부터 배운 교훈을 사회의 발전이라는 궁극적인 목표까지 도달할 수 있는 원동력, 자양분을 만들어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그런 측면에서 TV 프로그램이 이런 가교 역할, 중추적인 핵심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리프레시를 통한 사람들의 뇌리 속에 머무르고 있는 기억에 대한 상기가 필요하다. 특정 사건의 기념일을 제정하는 것 이외에도 이러한 날에 대한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내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1차원적인 보도뿐만이 아니라 2차적인 심층적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이미 우리 기억 속에 잊힌 수많은 사건 사고의 피해자들에게는 어렵겠지만 그들의 기억을 다시금 꺼내놓고 이러한 일들이 재발하지 않기 위한 노력들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지켜보는, 감시 아닌 감시의 역할이 언론의 자세 중에 하나이다. 비리로 고착화된 시스템을 개혁하고 국가를 개조하기 위해서는 국민을 대신하여 지켜볼 언론이 있어야 한다.

 

개인의 치매, 국가의 치매, 사회의 치매, 인류의 치매. 어떤 것이든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망각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결과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작금의 현실은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이라 보는 것이 아닌 앞으로의 미래에 대비하고 다시 똑같은 실수나 사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각인하는 모습을 이제는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그 때 뿐이지라는 한탄과 자조 섞인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망각의 가속화가 아닌 기억의 지속화를 이루어나가야 하지 않을까.